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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스컬럼] 그거 돈 되냐?

조회 수 6472 추천 수 0 2011.08.25 20:18:23

99년 7월 1일에 처음 현업 프로그래머로 일하게 되었고 이제 만 12년을 넘겼습니다.

2010년 12월에 회사를 관뒀으니 현업에서 일한것만으로 치면 11년 몇 개월 일했네요.

그간 일해오면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 생각만 해도 경기를 할거 같은 소리가 바로


"그거 돈 되냐?"


입니다. 물론 다양한 변종 표현이 가능합니다.


"얼마나 벌 수 있는데?" , "얼마 벌건데?"  등 자매품이 있는데 어느 쪽이든 들으면 돌아버릴것 같습니다.


이런 얘길 처음 듣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때였습니다. 전 재미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있었고 세상 물정좀 안다는 몇몇 선배들은 이렇게 말하곤 했죠. 


"그거 돈 되냐?" , "돈 안되잖아" , "돈되는걸 해야지."


짜증이 팍팍 났죠. 처음부터 돈 벌자고 시작한게 아니니까요. 

'그냥 재밌는걸 하다보면 실력도 늘고, 기술도 발전하고, 돈 될수도 있는거 아닌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니게 되면서 또 듣게 되는데 처음엔 저런 얘기 들을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첫 직무는 서브 프로그래머였고 이후에는 주로 3D엔진이나 네트워크 코드를 작성하는 일을 했으니까요.

그러다가 내 팀을 꾸리게 되고 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제 짜증 시작...

어느 개발자가, 그것도 프로그래머가 "돈 되냐?" 고 물었을 때 "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흥행 여부는 며느리도 모릅니다.


개발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품이 세상에 나올수 있도록, 또 정상적으로 판매 또는 서비스가 될 수 있도록 완전한 제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 부분에서 늘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그닥 인정받은 적이 없습니다. 제가 볼 땐 여러가지 이슈가 있었지만 경영진이나 사업하는 사람들의 이슈는 하나였죠. "돈 되냐?" 여기에 대한 확답을 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설령 뻥일지라도 확신에 찬  "돈됩니다."라는 답을 원했던것 같습니다.


제가 팀을 만들어서 게임 프로젝트를 리드했던게 3번인데 모두 중간에 캔슬되었습니다.


첫번째는 너무나 준비가 안된 상태의 소규모 창업이었기에 자금부족으로 캔슬.

두번째, 세번째는 그 빌어먹을 "돈 되냐?"에 막혀서 캔슬.


그런데 세번째는 정말 자신 있었거든요.


충분히 안정적인 플랫폼을 만들었고 팀은 잘 굴러가고 있었고 공개 유져테스트도 3번이나 무사히 마친 상태였습니다.


근데 접혔죠.


결정적인 요인은 "돈 안될거 같다."


제가 만들었던 네트워크 엔진으로 5개정도의 게임을 서비스했고 지금도 서비스하는 게임들이 있습니다.

제가 만들었던 3D엔진으로 4개 게임을 서비스했고 4개 모두 지금도 서비스중입니다.

그 물건들 가지고 몇 년간 수백억을 벌었습니다.


게임 프로젝트가 아니니까 "돈 되냐?"라고 물어볼 건덕지도 없었죠. 저까지 단 두명,혹은 세명 정도의 작은 팀이었으니까 사실 회사에서 신경도 안썼습니다. 덕택에 비교적 재밌는 코드들을 짤 수 있었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볼 수 있었죠.


결과적으로 돈벌었습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안정적인 플랫폼을 만들어놓으면 돈으로 바꾸기는 쉽습니다. 반면에 초반에 "돈됩니다"라고 말하는것보다 안정적인 플랫폼을 만들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저는 "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무도 미래를 알 수 없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안정적인 게임을 만들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차라리 쉽죠.


최근 모 회사의 입사면접을 봤습니다. 거기 팀원중 한분이 이런 질문을 하시더군요.


"경력이 이렇게 긴데 왜 잘된게 없죠?"


햐...그러니까 이 질문을 다시 번역하면 "왜 게임이 망했나요?" 내지는 "왜 돈을 못벌었나요?"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진행한 게임 프로젝트들은 돈을 못벌었죠. 그런데 실패라고 생각은 안합니다. 실패를 했다면 그 프로젝트를 캔슬한 회사가 실패한거죠.


마지막 프로젝트에서 전 한가지 빼고 목표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한국에서 찾기 힘든 BSP/PORTAL기반의 실내외 통합엔진을 만들어서 그걸로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서버에서 완전한 3D충돌처리를 구현했고 4000명의 유져를 커버할 수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완전한 네이티브 64비트 클라이언트와 64비트 서버를 릴리즈했습니다.

정기빌드와 정기테스트를 중심으로 개발을 진행하는 프로세스를 정립시켰습니다.

유져 상대로 공개 테스트도 했지요.


정식 서비스를 못한거 빼고는 당초 목표는 모두 달성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선입니다.


그런데 정식 서비스를 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그 모든 노력과 결과물은 거품이 되었습니다. 거품이라는 것은 돈으로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뜻 뿐만이 아닙니다. 결국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 면접관으로 들어오신 분이 절 보는 시각처럼 말이죠.


전 매우 씁쓸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흥미있는것 기술을 개발한다고 해도...현금화 시키지 못하면 다 뻘짓...이라는 결론입니다.


지난 8개월간 재밌는 코드들을 많이 짰고 앞으로 만들고 싶은것에 대한 아이디어도 잔뜩 있습니다.


하지만 이젠 굶어죽지 않기 위해 취업을 합니다. 이젠 아무 권한도 없고 재밌는 코드를 짤 가능성도 낮아보입니다. 일을 선택할 권리도 없는 아주 평범한 프로그래머 1,2,3,4일뿐이지요.


이젠 기회가 없습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은 기회가 없는걸 잘 알고 있습니다.


기회만 주어진다면 남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몇 가지쯤은 더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데...시간을 주면 돈이 될 가능성이 있는 것들도 몇 가지씩 더 만들어낼 자신이 있는데..더는 기회가 없다는게 무척 아쉽습니다.


남는 시간 최대한 쪼개서 개인적인 프로제트를 계속 진행할겁니다마는 회사에서 녹을 받으면 밥값을 해야하고 밥값하는게 쉽지 않으니 그러다보면 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겠지요.


가장 두려운건 이렇게 살다가 내가 하고싶은 것들을 모두 놓쳐버리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오늘 트위터에 돌던 한국의 소프트웨어 위기와 해커문화에 대한 글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자신은 해커라고 생각하는데 해커로서는 살기가 너무 힘듭니다. 결국 생계를 유지하다보면 해커일수 없지요. 해커는 돈과는 상관없이 재밌는 일에 몰두하니까요.


전 해커의 재주를 돈으로 바꿀 수 있는게 사업하는 사람들이나 경영하는 사람들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해커일수 있고 누군가는 제 재주를 돈으로 바꿀 수 있으면 이 얼마나 윈윈하는 좋은 관계일까요. 

"이거 돈됩니다"라고 뻥치지 않아도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장기적인 시각과 통찰력이 있고 그들이 기다릴줄 안다면 해커가 해커일수 있지 않을까요.


중언부언했는데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겁니다.


"돈 안되어보여도 돈 될수 있다"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해커들이 재밌는걸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돈될지도 모르잖아요.


재미있는 코드를 짜고 싶지만 굶어죽지 않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프로그래머가 해커일수 있는 날이 오기를...그러기는 힘들겠지만...기대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제게도 다시 기회가 찾아오기를.




상돈

2011.08.30 21:38:55
*.47.113.52

재취업 축하한다. 게임만이 아니고, 눈앞의 이익만 쫓아서 제대로 되는게 아닌거 같아.

팔아야 할 사람이 자꾸 만드는 사람한테 돈 되냐고 묻는 것은 자기가 할 일을 남한테 미루는거라니까.

여치

2011.08.31 08:51:20
*.168.0.1

상돈 /  축하해주니 고맙긴 한데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라서 씁쓸하다. 그러게 나도 돈되냐고 물어보는게 지 책임 미루는거라고 밖에 생각이 안드네. 그럴거면 처음에 시작을 말지.

경탁

2011.09.14 18:07:59
*.94.41.89

사실 돈이 될 거라고 몰라보는 경영진의 문제 아닌가요?

돈이 되냐가 아니라 이걸로 돈을 만들어 오겠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경영진이 필요한거죠...


근데 사실 돈이 될지 잘 모르겠는데, 그냥 한 번 해 보라고 하는 회사는 구글 밖에 못 봤어요... -_-"

여치

2011.09.15 19:16:42
*.168.0.1

과연// 그런 회사는 구글밖에 없을듯.

그나저나 오랫만이네~

사막

2011.09.28 12:37:16
*.166.112.207

홈페이지 바꾸셨네요~ 전 이전의 그 태그로 이루어진 홈도 정겨워서 좋았는데 ㅎㅎ

(혹시나해서 말씀드리면 저는 E로 시작하는 전 회사에 있었던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출생부터 죽을때까지 돈에 관련된것 밖에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아요.

참 재미없는 세상입니다...당장 눈 앞의 이익때문에 많은 것들을 포기하고 살아요.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할 수 있는 것도 안하고 살지요...흠흠.

그리고 원래 대한민국 클라이언트들은 눈높이가 낮다는걸 기본적으로 깔고 가야...허허

여튼 트위터에서도 여전히 열정을 불사르시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웁니다.

여치

2011.09.28 12:58:48
*.218.236.200

안녕하세요.

E로 시작하는 전 회사에 계셨던 분들은 대부분 절 싫어하셨던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분도 계셨던거 같네요.

비밀글로라도 본명 밝혀주시거나 트위터로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인사라도 하고 알고 지냈으면 좋겠네요.



사막

2011.09.30 10:33:58
*.166.112.207

"비밀글입니다."

:

여치

2011.09.30 14:40:46
*.218.236.200

이미 맞팔하고 계신 분이네요. 멘션도 몇 번 주고 받았지요. 요샌 트윗 잘 안하시더라구요.

글님

2012.01.30 01:57:49
*.39.193.154

여치님 엔진으로 돈 많이 벌었죠... ^^ 오래되었지만 안정적으로 서비스했었구요. 업그레이드가 꾸준히 되었으면 지금도 손색없을 꺼라고 생각해요(포탈 2를 해보고 확신). 그러나 아시겠지만 재주 부리는 것과 돈 챙기는 건 따로죠... 이래서 월급쟁이를 잘 안할려고 하나봐요 ㅎ

여치

2012.01.31 08:56:34
*.168.0.1

솔직히...제가 만든 것들 가지고 돈 많이 벌었죠. 제가 받은건 월급 뿐이고. 결국 팽 당하고.

창업밖에 답이 없구나..라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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